최근 미국 국채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이른바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금리 급등의 배경에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 불안정성과 지정학적 긴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채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
정책불신
현재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현상은 기술적 요인이 아닌 제도적 신뢰의 균열을 의미한다. 미국 국채는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안정적인 자산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사실상 디폴트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혼선, 불확실한 재정 운용, 그리고 연방정부 기능의 예측 불가능성은 시장 참가자들에게 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라자드의 로널드 템플 수석 전략가가 언급한 대로, 트럼프 정부의 통치 행위가 오히려 미국의 법치주의와 제도적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자극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기간 프리미엄’ 상승을 통해 장기 국채 금리를 밀어 올리는 효과를 낳고 있다. 시장은 단기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국채 금리는 상승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향후 미국의 정책 리스크와 시스템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게다가 최근 3년물 국채 응찰률이 평균을 밑돌았다는 점에서, 국채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미국채에 대한 수요 기반이 약화되고 있으며, 투자자들이 그 안정성을 더 이상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매슈 스콧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 가능성을 지적했으며, 이는 미국 국채 시장이 구조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정치적 갈등은 금융 시스템 전반에 리스크를 전이시키며, 이는 시장의 금리 구조를 왜곡시키고 국가 신뢰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신뢰는 자산시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무형의 자산’이며, 그 신뢰가 흔들릴 경우 국채 금리는 급등하고, 이는 국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융취약
이번 금리 급등의 또 다른 핵심 원인은 바로 헤지펀드들이 직면한 유동성 위기다. 특히 ‘베이시스 트레이드’라 불리는 차익거래 전략의 대규모 청산이 국채 시장의 매도 압력을 증가시키고 있다. 베이시스 트레이드는 국채 선물과 현물 간의 가격 차이를 이용하여 차익을 실현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보통 50~100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가격 차가 확대되거나 유동성이 급격히 마를 경우 대규모 청산이 발생하게 된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최근 주요 미국 은행들이 일부 헤지펀드에 마진콜을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이들 펀드가 담보로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급매하면서 금리가 급등했다. 이는 개별 펀드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금융 구조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Crisis Economics』에서 누리엘 루비니가 지적한 대로, 고 레버리지 금융 구조는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며, 일정 임계점을 넘기면 자기 강화적인 붕괴 메커니즘을 유발하게 된다.
아폴로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베이시스 트레이드 규모가 약 8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는 팬데믹 초기에도 국채 가격 급락을 유발한 원인이었으며, 현재 역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고위험 금융 전략은 경기변동기에 시스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금융시장은 정보 비대칭성과 신뢰 구조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신뢰가 무너지면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주식시장으로의 확산은 아직 미미하나, 국채 시장 유동성을 저하시켜 시장 전체의 안정성에 중대한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금융위기의 전조 증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정책 당국과 투자자 모두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시장의 자율성만으로 위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믿음은 현재 시험대에 올라 있다.
패권경쟁
이번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을 둘러싼 마지막 축은 바로 중국과의 지정학적 긴장이다. 최근 월가에서는 중국이 보복 조치로 미국 국채를 매각하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금리 급등 시점이 미국 시간 기준 새벽, 즉 중국과 한국의 낮 시간대에 집중되었다는 점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현재 중국의 미국채 보유액은 약 760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2013년 정점이었던 1조 3000억 달러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이며, 이는 단기적인 보유 조정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자의든 타이든 이제 명확히 무역 상대국이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자다.
중국이 보유한 국채를 경제적 무기로 전환하는 시나리오 일부를 현실화 하였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추진하는 금리 인하 전략은 자국 산업 투자 촉진과 재정 운영 부담 완화라는 목적이 있지만, 중국이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국채를 매도하고 금리를 끌어올린다면 이는 미국 경제정책 전반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관세 보복의 일환으로 미국채를 전략적으로 매도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며, 이는 단지 경제적 요인만이 아니라 지정학적 의도를 포함한 행위로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미국 금융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를 정밀 타격하고 있다는 분석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미국 국채는 더 이상 절대적인 안전 자산이 아니며, 지정학적 전쟁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장은 인식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미국의 금리 구조가 외생 변수에 의해 교란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결국 달러 패권의 약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국 내에서 정책 유연성을 상실하고, 국제 금융질서 내에서의 리더십 또한 흔들릴 수 있다. 이 모든 변화는 미국 국채 금리라는 하나의 지표를 통해 시장에 투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