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2024년 11월 발표된 미란보고서는 단순한 이론적 정책 제안이 아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질적인 정책 로드맵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를 작성한 스티븐 미란은 글로벌 무역 질서의 구조적 왜곡, 달러 고평가, 미국 제조업의 쇠퇴라는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을 제시했다. 그리고 2025년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실제로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보고서의 제안 중 하나를 공식화했다. 그는 “미국의 해방의 날”이라며 전 세계 60개국을 상대로 기본 10%, 국가별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25%, 중국 34%, 일본 24%, 대만 32%가 적용 대상이다. 이 수치는 트럼프가 “상대국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의 절반을 적용했다”라고 밝힌 기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의 배경은 단순히 무역 적자 축소가 아니다. 미란보고서는 무역 정책과 통화·재정 전략을 결합하여 미국의 구조적 경쟁력을 회복시키려는 구상을 담고 있었다. 보고서의 핵심은 ‘공정무역 복원’이라는 정치적 슬로건 뒤에, 미국 산업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정교한 시나리오를 깔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관세-통화 연계 효과’에 대한 설명은 이번 정책이 단순한 보호주의가 아닌, 환율·수출경쟁력 개선을 동시에 겨냥한 복합전략임을 보여준다. 예컨대 보고서는 관세 인상이 수입물가 상승을 야기하더라도, 상대국 통화의 평가절하가 이를 상쇄해 실질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이는 2018~2019년 미중 무역전쟁 당시 일부 확인된 구조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이번 발표에서도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면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단순한 무역 억제가 아닌 ‘생산기지 유치’라는 전략적 목적을 분명히 했다. 이는 미란의 보고서에서 지적된 대로, 관세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이제는 학계나 싱크탱크의 시뮬레이션이 아닌, 현실 정책에서 미란보고서의 철학이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채권구조
미란보고서가 제안한 또 다른 중대한 정책은 바로 100년 미국채 도입이다. 이 제안은 단순한 채무 연장이 아니라, 미국의 기축통화 지위와 국제 채권시장의 역학을 재편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다. 현재 미국의 연방 부채는 약 34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그 상당 부분이 단기물 위주로 구성돼 있어 상시 차환 부담이 따른다. 미란은 보고서에서 미국이 초장기물 국채, 특히 100년 만기 국채를 도입하고 이를 외국 중앙은행 보유 미국채에 적용하면, 단기 재정 부담을 장기화하면서도 이자비용은 낮출 수 있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일본이나 중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 국채를 100년 물로 스왑 할 경우, 미국은 향후 수십 년간 재차 발행할 필요 없이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스왑 전략은 연간 약 1천억 달러의 이자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미 재정적자의 구조적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심각한 시장 리스크도 동반한다. 첫째, 100년물은 시장에서 거의 유동성이 없고, 투자자들은 극단적인 만기 리스크에 대해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 둘째, 외국 보유자에게 조건 변경을 ‘강요’하는 방식은 신용 프리미엄 상승, 나아가 국채 시장의 정치화라는 위험을 내포한다. 실제로 월가에서는 이 정책이 “사실상의 관리 디폴트(managed default)”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도 “국채는 절대적인 신용을 바탕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정치적 개입이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본인은 과거 “부채는 협상의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 재정 전략에 있어 비전통적 접근을 선호해 왔다. 1기 재임 시절에도 50년·100년물 발행을 재무부가 검토한 적이 있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기에는 미란보고서라는 명분과 관세 수단과의 결합 전략을 통해 실제로 실현될 여지가 커졌다. 이 정책은 글로벌 채권시장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국, 일본, 중동국가 등 미채 보유 상위국이 반발할 경우, 국채 매도나 자산 다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장기금리에 상방 압력을 주고, 달러 신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일부 연기금이나 보험사는 초장기물을 선호할 수 있으며, 오스트리아·영국 사례처럼 일정 수요층은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이 정책의 성패는 발행 방식의 ‘강제성’ 여부와 국제 신뢰도 유지의 균형에 달려 있다.
파장예측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발표는 그 자체로도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배경에 있는 미란보고서의 정책철학이 본격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실제로 한국은 이번 조치로 인해 25%의 상호관세 대상국으로 지정되었다. 주요 품목은 자동차, 전자제품, 석유화학 등으로 추정되며, 산업 전반에 적지 않은 부담이 가해질 전망이다. 특히 자동차는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품목으로, 고율 관세가 지속될 경우 해외 생산기지 이전이나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긴급 대응 TF를 구성하고, 미국과의 외교 채널을 통해 관세 면제 협상을 추진 중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관세는 필요 없다”고 밝힌 만큼, 실질적으로는 투자 압박 형태로 작동할 수 있다. 중국 역시 34%의 상호관세를 부과받으며 반발하고 있으며, 보복관세 34%를 2025년 4월 10부터 시행예정이고 위안화 절하와 희토류 등 전략물자 제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로 인해 환율전쟁이 재점화될 수 있으며, 미국은 이에 맞서 다시 통화 개입이나 추가 조치를 단행할 여지도 있다. EU, 캐나다, 일본 역시 보복관세를 검토하고 있으며, 세계무역기구(WTO)는 이미 다자간 통상질서가 무력화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IMF는 “무역 블록화와 통화 분절화가 장기적으로 세계 GDP의 최대 7%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상호관세 정책은 단기적으로 미국 산업의 일자리 창출, 무역적자 축소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확대시키고, 미국 국채 시장과 달러 신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통화, 재정을 통합하는 전방위적 경제 전략을 실행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미란보고서의 시나리오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 전례 없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