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기획
최근 한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협상에서 자국의 동맹국들, 특히 아시아의 주요 파트너국을 협상 우선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처럼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우선 협상 방침은 표면적으로는 우호적인 외교 제스처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냉철하고 계산된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동맹 우선’이라는 발언의 핵심은, 자국의 이익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동맹국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외교적 수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실질적인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 국가의 무역외교 기조는 내부 경제 전략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자국의 제조업과 산업기반을 되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손대기 쉬운 협상 파트너를 고른 셈이다.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자국 기술과 부품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작동할 수 있는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을 우선 협상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전략적으로 여러모로 유리한 선택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동맹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부담을 전가하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봐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사고는 외교를 감성적 관계가 아닌 계산 가능한 자산으로 취급하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는 외교의 미래가 기존의 도덕과 명분이 아니라, 철저한 전략적 목적에 의해 설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압박포위
이러한 정책의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이라는 핵심 경쟁국에 대한 전략적 포위와 고립 작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협상 대상을 순서대로 선택한 듯 보이나, 실제로는 협상의 강도를 미리 조절하고 중국과의 정면 대결에 앞서 안정된 전선을 구축하려는 수순에 가깝다. 이는 무역 전쟁이라는 거대한 충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정렬 전략이며,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낮은 파트너국들과의 합의를 통해 중국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포위망을 완성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러한 방식은 불확실한 국제 질서에서 리스크를 분산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선과 타깃을 구체화해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기획적 대응이다. 결과적으로 자국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의 양보를 끌어내는 한편, 본격적인 대중 전략에서는 다자적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외교 전략이 단순한 양자관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자외교 속에서 자국이 중심에 서려는 구조적 질서 재편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국내 정치적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강경한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하는 자국 내 여론에 부응하면서, 외교적 분쟁의 형태로 비치지 않도록 ‘동맹과의 우선적 조율’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는 이중적 접근이다. 이는 명백한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모호성과 유화적 언어를 통해 갈등을 은폐하면서도 실질적 성과를 도모하는 전형적 외교기법이다. 자국의 경제적 불균형, 특히 제조업의 쇠퇴와 대외무역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구조 개혁이 필요하지만, 당장 그것이 어렵기에 단기적 승리를 연출할 수 있는 전략적 협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외교행위는 표면적 언어와 이면의 행동 간 괴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괴리 속에 국가전략이 숨어 있다.
책임분산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정책 결정자들이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지는가이다. 오늘날의 무역 정책은 점점 더 고도의 전략성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그 결정 구조는 책임에서 멀어지고 있다. 핵심 정책 입안자들은 협상을 지시하고, 외교 전략을 설계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주체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수출기업, 중소 제조업체, 농업 종사자 등 실질적 피해 당사자들은 결정 구조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위험의 분산이 아니라 책임의 분리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외교 전략뿐 아니라 정책 전반에서 반복되는 구조다. 명분과 전략을 쥐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권력의 중심에 있으며, 리스크를 외부에 전가하는 능력에 따라 생존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런 체계는 장기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기반을 낳는다. 시스템이 진정으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피드백’이 작동해야 하며, 정책 실패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부과되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외교와 무역은 점점 더 정치적 생존과 단기 성과 중심의 왜곡된 형태로 전락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외교는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전략적 선택을 반복하며 진화하는 체계다. 따라서 외교 전략은 정태적 계획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이른바 ‘옵션 전략’, 즉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응할 수 있는 설계와 회복력을 갖춘 외교가 필요하다. 충격에 강하고, 실패를 복구할 수 있는 구조는 단순한 방어 전략이 아니라 외교적 시스템 전체의 복원성과 적응력을 키우는 방식이어야 한다. 특히 무역 협상과 같은 민감한 분야에서는, 협상 당사국 모두가 결과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과 이해를 공유해야만 지속가능한 합의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