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배경
2025년 4월 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약 28분간 전화 통화를 진행했다. 이는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한미 고위급 간의 첫 직접 소통으로, 의례적 인사 이상의 전략적 메시지가 담긴 대화로 평가된다. 통화 직후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한국 측의 대표단이 미국에 도착 중이며 상황은 긍정적이다"는 취지의 발언을 올려, 한미 간 주요 현안들을 묶어 논의하는 협상이 본격화될 것임을 암시했다. 통화 내용에는 무역 적자 문제, LNG 수입 확대, 방위비 분담금, 조선업 협력, 관세 문제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는 트럼프 특유의 연계협상(Linkage Politics)의 전형적인 예시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통화에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조선업 경쟁력, 미국산 LNG 구매, 주한미군 방위비 부담 등을 언급하며 이를 패키지로 묶은 협상을 제안했고, 한 대행은 "한미가 윈윈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며 장관급 실무협의를 지속하자고 화답했다. 이와 함께 북핵 위협에 대한 공조도 재확인되었으며, 트럼프가 과거 김정은과의 직접 협상을 시도했던 점을 의식해 한국의 전략적 역할을 재강조한 발언들도 오갔다.
이러한 일련의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협력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행간을 보면 트럼프는 한국을 '거래 대상국'으로 바라보며 자국의 통상적 이익과 안보비용을 일괄 정산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과거에도 한국을 "현금인출기(money machine)"라 표현하며 방위비 분담금 100억 달러를 언급한 바 있으며, 이는 현재 1조 6천억원 수준의 방위비보다 9배 가까운 금액이다.
대응전략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단기적 대응을 넘어선 구조적 전환에 있다. 트럼프가 제시한 다자적 협상 의제에 대해 우리는 "Smart Concessions, Deep Leverage"(영리한 양보, 깊이 있는 지렛대 전략)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 즉, 미국이 원하는 정치적 성과와 가시적 메시지를 제공하되, 실질적 양보는 최소화하고 전략산업 및 장기 협력 프레임으로 협상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야 한다. 다음과 같은 분야별 접근이 필요하다:
방위비 분담금: 현금 증액보다는 장비 지원, 미군 기지 내 한국형 스마트베이스 구축, 방산 공동 프로젝트 등으로 분산화.
무역 및 관세: 미국 내 고용 창출형 투자 발표(Buy America 전략)와 부가가치 높은 제품 중심으로 수출 재구성.
LNG 구매: 단기 구매 확대와 알래스카 투자 조건부 수용. 한국 가스공사의 인프라 투자 참여를 통한 미국 내 고용 증대 강조.
조선업 협력: 美 조선소와 MOU 체결 후 기술 제공 및 공동 훈련 지원, 부품 현지화 비율 확대.
북한 문제: 북핵 위협의 동맹 차원 공조 강화, 직접 협상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비핵화 메시지 반복.
또한 한국은 일본, EU 등 유사한 압박을 받는 국가들과의 정보 교류 및 공동 전략 모색을 통해 미국의 일방주의에 다자적 부담을 형성해야 하며, 트럼프의 협상 레토릭이 국내 정치용 쇼맨십임을 간파하고, 일정 부분의 '명분용 성과'를 제공하면서도 실속은 챙기는 외교 기술이 절실하다.
협상카드
이 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원자력 분야 협력은 매우 중요한 카드다. 원자력은 에너지 안보, 통화 패권(달러 중심의 결제 시스템), 해상 무역로 보호라는 미국의 핵심 전략 이익과도 직결되는 산업으로, 그 자체가 지정학적 경쟁력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원전 재건과 원전 수출을 통해 에너지 주권과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며,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능력과 사업관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식 협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미국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EPC 역량을 결합한 국제 공동 진출 전략을 제안해야 한다. "Atoms for Allies"라는 프레임 아래 한미 합작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제3국(중동, 동유럽, 동남아 등) 시장에 SMR(소형모듈원자로) 또는 대형 원전 프로젝트를 공동 수주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세계원자력협회는 2035년까지 SMR 시장 규모가 약 6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차세대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 분야이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 협력을 넘어, 일자리 창출과 기술 동맹, 탄소중립 등 다층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 트럼프 정부가 내세우는 국내정치 전략에도 부합한다. 나아가 원자력 분야에서의 공동 투자나 기술개발 협력이 무역, 안보, 에너지 세 축에서 협상의 완충재로 작용할 수 있어, 매우 정교하고 전략적인 카드로 기능한다. 더 나아가 한국이 원자력 분야에서 미국과 핵심 이익을 공유하고 공고히 연결됨으로써, 한국 자체가 미국의 전략적 핵심이익 일부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사안별 대응 전략 요약표
이슈 | 트럼프의 요구 | 한국 대응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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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분담금 | 대폭 증액 (최대 100억 달러) | 기여 방식 다변화: 현금이 아닌 장비 구매·훈련 지원 등 / '안보기여지수' 개념 도입 / 美 방산기업 한국 투자 확대 조건 |
관세 및 무역적자 | 철강·자동차·배터리에 25% 관세 | 'Buy America + Assemble in Korea' 전략 / 미국 내 공장 증설 발표 |
LNG 수입 압박 | 대규모 구매 지속 요구 | 단기 구매 확대 + 알래스카 투자 연계 / 장기 감축 로드맵 제시 |
조선업 협력 | 미국 내 수리·건조 요구 | 美 조선소와 MOU / 한국 인력 파견 및 기술 교류 |
대북 정책 | 트럼프의 독자 노선 가능성 | 트랙 2 채널 유지 / 전략 자산 배치 및 북핵 공조 강조 |
원자력 산업 협력 | 미국 내 원전 재건, 수출 확대 | 시공 및 관리 역량 + 미국 원천기술 결합 / 제3국 공동 진출 / SMR 공동개발 및 투자 추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