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
2025년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 도입을 공식 발표하며, 글로벌 무역질서에 충격을 던졌다. 그는 “미국 상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국가에는 우리도 동일하게 대응할 것”이라 밝혔고, 이는 자유무역 기반의 국제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선언이었다. 이는 단순한 경제 조치가 아니라, 정치적 협상의 ‘전술 카드’이며,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볼 때 하드파워의 정교한 활용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은 한국과 같은 중견국을 대상으로 일방적 무역 압박을 가한 뒤,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 로비를 유발하며, 정치적 지렛대로 삼으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를 ‘토끼몰이식 협상’이라 표현할 수 있다. 한국이 이 같은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공세적 주도권 전략을 전개해야 한다. 한국은 단지 피해국이 아니라,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며, LG와 SK는 미국 내 배터리 생태계의 핵심 공급자이다. 또한 현대·기아는 미국 내 1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미국 경제에 실질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한국과의 협력을 지속할 필요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우리는 필수 파트너’라는 메시지를 강력히 제기하고, 트럼프식 압박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제 질서의 균형을 잡는 독립적 협상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협상력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은 무역 갈등을 가장한 협상 지렛대이며, 그 배경에는 국내 정치적 목적도 명확히 자리한다. 2024년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는 러스트벨트 지역 노동계의 지지를 이어가기 위해 ‘무역의 불공정성’을 선전하고, 외국 기업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국내 지지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국제협상에서 전통적 현실주의의 연장선에 있으나, 협상의 진정한 힘은 군사력이나 관세가 아니라 제도 설계 능력, 곧 ‘게임의 룰’을 만들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이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미국의 틀 안에 갇히기보다 다자협력을 통해 협상 공간을 넓히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CPTPP, IPEF, WTO 개혁 논의 등에서 한국은 디지털 무역, 탄소국경세, 공급망 규범 등 핵심 의제에서 선도적 입장을 취할 수 있으며, 이는 미국과의 양자 협상에서도 레버리지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미국 내 정치 지형을 정밀하게 분석한 ‘정치 로비 전략’도 강화해야 한다. 단순히 연방정부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앨라배마·조지아·오하이오 등 한국 기업이 직접 투자한 지역의 지방정부 및 지역구 의원과의 연계를 통해, ‘한국 기업=지역 경제 발전’이라는 프레임을 선점해야 한다. 특히 지역 언론, 노동조합, 경제단체와의 협력은 미국 내 여론 형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며, 협상력 증진에 직접 연결된다. 협상에서 이기는 법은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당신 없이는 협상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그 메시지를 제시할 시점이다.
대응책
한국은 이번 사태를 단기적 무역분쟁이 아니라, 국제경제질서의 구조적 재편이라는 인식 하에 다층적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첫 번째로 필요한 대응은 수출 다변화 및 무역 체질 개선이다. 미국 중심의 무역 구조는 리스크를 증폭시킨다. ASEAN, 인도, 중동, 남미 등으로의 시장 다변화와 디지털 무역 및 서비스 산업의 역량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공급망 내재화와 산업 자립성 강화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항공 등 전략 품목에 대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율을 높이고, 기술 보호 및 핵심 인프라 유출 방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 탄력성을 확보하는 결정적 요소다. 세 번째는 기술표준과 제도 설계의 주도권 확보다. 한국이 AI, 6G, 디지털 결제, 바이오 등 미래산업에서 국제표준을 주도한다면, 그것은 협상력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ISO, ITU, OECD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 한국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고, 민관 R&D 협력을 통해 기술외교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네 번째는 안보와 통상의 연계 전략이다. 한국은 한미일 안보 삼각축에서 핵심 국가이며, 대북 억제 및 인도태평양 전략 수행에서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다. 안보 협력을 지속하되, 경제 협상에서 공정한 대우를 요구하는 ‘링키지 전략’을 신중히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내부 제도의 포괄성 확보다. 산업 정책은 특정 재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과 혁신 생태계를 중심으로 구성돼야 하며,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투명한 통상 거버넌스를 통해 대외 협상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단순한 수출국이 아니다. 한국은 국제경제의 전략축이며, 스스로 규칙을 설계하는 규범 주도국으로 성장해야 할 시점이다.